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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드디어 30년된 내 입술 밑 상처에게 작별을 고했다. 미루고 미루던 일 이번 한국 방문동안에 저질러 버렸다. 2012년 1월 12일. 안성열 성형 외과에서 흉터 제거 수술.

현재 친정에 머물고 있다. 아이들 맡길 사람이 필요했는데 엄마는 오늘 일이 있으시고 아빠는 혼자 아이를 둘 다 보시기 힘드시고, 시어머니는 수련회 참석중. 결국 시아버님 혼자 아이 둘을 다 봐주셨다. 선뜻 기꺼이 맡아 주신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머 전신마취 수술도 아니고 작은 흉터 제거 수술인데도 남편은 절대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오늘 하루종일 나의 기사가 되어 주었다. 사실 차로 가는 것보다 전철이 빠를텐데 굳이 기어코 나를 데려다 주고 데리고 왔다. 이런 남편도 드물 것이다.

아침 10시 친정을 출발해 아이 둘을 데리고 시댁에 갔다. 아이들이 자리잡고 잘 노는 것을 보고 점심 먹을 거리를 챙겨 놓은 후 남편와 12시쯤 시댁을 출발해 신사역 근처 성형외과로 갔다. 차로 가니 혹시나 막힐까봐 우선 목적지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의 선견지명인지, 아니면 중요한 일일 수록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는 꼼꼼함 때문인지, 차가 무지하게 막히더니 결국 무슨 사고가 났는지 성수대교 진입을 경찰이 막는다. 삥삥 돌아 신사동에 도착하니 1시 반경. 점심도 여유있게 순두부 먹고 우아하게 커피도 마셨다. 남편에게 박수 보내야 한다. 짝짝짝.

난 이런 일에 별로 겁이 없는 편인데 어제는 괜히 쪼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내 살을 도려내고 다시 봉합하는 수술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고 있었단 생각이 들면서 살짝 두려워지기 시작했었다. 성형외과에서 수술 후 주의 사항을 들은 후, 옷 갈아 입고, 간단한 세안까지 하고, 내 상처의 before 사진도 찍고 수술 대에 누웠을 때, 그 상처를 가지고 살았던 지난 30년이 떠올랐다.

30년쯤 전, 1월 2일, 주일 날이었다. 신나게 기분좋게 새해 처음으로 교회 갔다 오는 길에 너무 기분이 좋았는지 약간 흥분한 채로 뛰어 오다가 콩크리트 길 바닥에 세게 넘어졌다. 그당시 흔하고 흔사던 자갈 섞인 울퉁불퉁 콩크리트 내리막길에서 넘어지면서 난 길에 박혀있던 돌맹이에 세게 내 턱을 부딪혀 아주 깊은 상처를 내었고 그 충격이 너무 큰 탓에 내 앞 윗니 두개까지 입안에서 입술 안쪽에 상처를 내어서 입 안팎으로 피를 엄청 나게 흘렸었다.

난 사실 어릴 적에 조심성이 별로 없어서 여기 저기 몸에 상처가 많은 여자아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부상은 처음이었고 나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새해 정초부터 딸을 택시에 태워 이병원 저병원 뛰어 다니셔야 했다. 처음으로 찾아간 내가 자주 다니던 외과 병원(이름도 잊지 못하는 문영식외과)에서는 원장선생님이 일요일이라 안계시니 간단한 응급처치만 해주고선 날 내보냈다. 그 다음에 간 어떤 병원에서는 여자아이 얼굴이니 성형외과에 가야 한다며 또다시 나를 밀어냈다. 결국 간 곳은 고대병원 성형외과. (그당시 성형외과는 흔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젊은 아저씨가 중얼중얼 하면서 내 얼굴에 바늘을 대었다. 

따갑고 아팠다. 하지만 난 아주 잘 참는 아이었다. 꾹꾹 참아가며 한바늘 한바늘 받아들였다. 내가 아프다는 소리는 내면 그 의사선생님은 '왜 아플까... 안아플텐데... 뭐가 아퍼...' 그런 말을 반복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안과 밖을 다 꼬메고 나서 내 입은 상상못할 정도로 부어 올랐고, 입 안에서는 실밥이 따끔따끔 나를 찔러댔다.
 
바깥에는 드레싱을 할 수 있었지만 입 안에는 드레싱을 못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소독약을 입에 물었다 뱉기를 반복해야 했다. 아픈 상처도 싫고 따끔거리는 실밥도 싫고 소독약 맛도 싫었다. 게다가 밥도 잘 못먹었다. 넘어져 다치기 직전 급하게 뛰었던 그 순간이 너무나 후회됬었다. 그래서 빨리 빨리 낫기를 바랬지만 그때만 해도 낫기만 하면 될 줄 알았지 그 상처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으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성형외과의 시술이었지만, 그 때 날 치료한 그 의사선생님은 인턴이었을까? 아니면 레지던트? 아뭏든 너무나 선명하고 촘촘한 수술자국이 내 입술 밑에 떡하니 남게 되었다.

하지만 희안한 건, 지난 30년 동안 난 별로 그 상처를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더랬다. 나에게 그 상처에 대해 뭍는 사람도 꽤 있었고, 나 자신도 거울을 볼 때마다 신경이 쓰였을 법 한데, 난 자라면서 점점 그 상처의 존재를 잊으면서 살게 되었다. 사춘기 시절 그 상처가 내 마음의 상처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을텐데, 정말이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테고 이 상처가 내게 준 영향은 "완전제로"였다. 이렇게 눈에 띄는 두드러진 상처가 나에게 전혀 컴플렉스로 작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정말 감사드린다. 내 상처에 별 신경 안 써준 우리 부모님을. 날 볼 때마다 '아이고 이 상처를 어쩌니..' 하셨다면, 나도 그 상처가 계속 신경이 쓰였을 텐데, 우리 부모님이 나에게 해준 말 중 그 상처에 대한 말은 정말 몇마디 없었다. 대신에 내가 얼마나 예쁜지만 강조해 주셨던 것 같다. (우하하하 나보고 공주병이라고는 하지 말아주시길... 부모에게 자식은 이쁘기만 한 존재라는 걸 자식있는 사람은 알지 않겠는가...) 우리 언니들도 마찬가지. 툭하면 나보고 예쁘다고 해주었지  '언젠가는 없애야 할 상처'를 강조하진 않았던것 같다. 아뭏든 나의 자아상에서 그 상처는 온데간데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신경안쓰이는 이 상처가 남들에게는 꽤나 신경쓰이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우리 남편도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약 2달 동안은 나 만날 때 이 상처만 보였다고 했다. 난 남들이 상처에 대해 물어봐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때로는 무용담처럼 그 상처에 얽힌 이야기를 늘어 놓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내 상처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각들이 나한테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보호하셨다는 생각도 든다.

난 내가 이 상처 때문에 사람을 사귀는데 지장을 줄 것이란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지장을 줄지도 모르겠단 의심도 한 적이 없다. 내가 결혼하는데 지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본적도 전혀 없다. 실제로 난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결혼도 했다. 

수술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난 과연 왜 이제와서 이걸 없애려 하나... 라는 질문을 다시 나에게 던졌다. 없으면 더 좋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과 이번엔 괜히 성형이 하고 싶어져서 한국에 온 김에 해 치우고 싶었던 건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진짜 대답은 "아이들을 위해서" 이다. (남편이 내게 수술을 권한 것도 이 이유니까..) 난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 자신에 대한 것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내 성격, 내 어린시절, 내 배경등등... 그러면서 언젠가 내 아이들이 묻게될 내 상처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나 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상처에 대해 물어볼 내 아이들의 친구들이 신경쓰이기 시작했던 거다. 아이들을 기르면서 나 자신에 대한 자신이 점점 없어지는 건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눈부신 수술대의 불빛 때문에 눈을 감으면서 '그냥 놔둘 걸 그랬나? 상처를 가지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더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햇지만, 이미 늦었고 상처가 없어지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난 이미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취 주사는 많이 아팠다. 아파하는 나를 원장님이 살짝 놀리셨다. 중간에 마취가 살짝 풀렸는지 몇번 따끔거렸지만 대부분의 시간동안 그냥 턱이 얼얼하기만 했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하나도 안 아픈 건데 지금의 나는 작은 따끔거림도 참기 싫어하고 있었다. 오히려 30년 전의 어린 은성이가 더 의젓해 보인다. 

수술은 지루했다. 얼얼한 턱. 얼굴을 간지럽히며 지나가는 수술 실. 무슨말인지 못알아 듣는 의사와 간호사간의 대화. 그리고 눈을 감아도 여전히 눈부신 수술대 불빛. 가끔 내 살이 땡겨지고 있다는 걸 느끼거나 살짝 따끔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지루한 시간에 할 수 있는 일 중엔 기도가 최고다. 수술대에서 엄마 아빠 시부모님 남편 아이들 언니들을 위해 기도하다가 눈물 찔끔 나올 뻔 했다. 그리고 자연이 기도는 감사기도로 흘렀다. 날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시는 부모님. 내 인생의 큰 서포터 언니들. 내 상처를 보면서도 날 사랑해준 그리고 지금도 사랑해 주는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들 딸. 너무나 좋으신 시부모님까지 난 너무 복이 많다. 특히 지금 밖 대기실에서 벌 아닌 벌을 서고 있는, 날 위해 내가 마다해도 같이 따라와준 남편이 너무 고맙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3,40분 쯤 걸렸을까? 아님 한시간 쯤 흘렀을까? 턱에 잔뜩 테이프를 붙이고 마스크까지 쓰고선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별 피곤할 일도 없었는데 옷 갈아 입고 다시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에 나가는 내 몸이 천근 만근이었다. 남편이 내 곁에 있어준 것이 다시 너무 고마왔다. 

밖에 나오니 눈발이 날린다. 지난번 눈이 왔을 때, 정말 오랜만에 눈을 보는데도 남편이 곁에 없고 내 손에 전화기도 없어서 남편에게 전화 할 수 있는 상황도 못 되는 것이 너무 아쉬웟는데 지금은 남편 부축을 받으면 눈을 맞고 있다니... 행복했다. 

이젠 난 2주동안 말을 삼가야 한다. 수술 부위를 많이 움직이면 안되기 때문이다. 먹는 것도 티스푼으로 조금씩 떠 넣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도 흘리기 일쑤이고 잘 삼켜지지도 않는다. 아랫입술도 엄청 부어 있어서 가끔 침도 그냥 흘러 나온다. 그래도 30년 전보다 낫다. 우선 입 안에는 상처가 없고 따끔거리지도 않으며 음식 먹는 것도 훨씬 수월하다. 

아이들과 의사소통이 가장 힘들다. 하지만 웃기기도 하다. 내가 손짓발짓하면서 '어어'로 모든 말을 하되 억양만 달리하는데, 하늘이가 그런 내 소리(말도 아닌)를 따라한다. 같이 '어어'  하니까 너무 웃기다. 평화는 곧잘 내 바디 랭기지를 이해하고 실행에 옮긴다. 기특한 것. 손으로 변기를 가리키며 '어어' 했더니 물을 내리고, 휴지들고 엉덩이를 살짝 쳤더니 닦아달라고 엉덩이를 내민다 또 손을 부비부비했더니 손씻으러 가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스크 안의 내 부은 입술을 보더니 너무 안쓰러워 한다. 수술 후 주의 사항 중에서 웃는 것이 가장 안 좋다던데 아이들 때문에 자꾸 웃음이 나오려 해서 아이들과 접촉을 최대한 줄여야겠다.

날 웃기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남편. 내 손짓발짓을 잘 알아 들으면서도 장난으로 해석하면서 날 웃긴다. 내가 '자기 최고야' 의 의미로 두 엄지를 들어 보였더니, "머? 때리고 싶다고?" 하더니, 내가 '웃기면 죽어'의 의미로 주먹을 들어 보였더니 "사랑한다고?" 머 이런식으로 말한다. 아무래도 남편도 멀리해야 겠다.  

집에 오자마자 날 안아주는 엄마. 엄마의 품은 언제나 좋다. 여전히 손주들 재롱에 즐거우신 아빠. 아빠의 웃음은 언제나 듣기 좋다. 이렇게 나의 꿈같은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이제 2주일도 남지 않은 한국 생활. 그것도 벙어리로 살아야 하는 2주지만 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묻혀있는 즐거운 시간이리라.

아, 처음으로 돌아가자. 이 포스팅은 지난 30년간 나랑 같이 있어줬던 그 상처에게 작별을 고하기 위함이었지. 그 상처가 좀 서운해 했을까? 하는 생각을 살짝했다. 아무리 쥐죽은 듯 있던 상처지만 나의 일부분이었는데 떨어져 나가면서 날 원망했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해 봤다. 어쨌던 간에 그 상처 덕분에 난 내가 얼마나 복받은 존재이며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 난 다시금 깨달았다. 고맙다는 말은 하면서 작별을 고해야겠군. 

이 상처가 떨어져 나갈 때 나의 다른 부분도 같이 빠져 나갈 순 없을까? 라는 상상도 해 봤다. 예를 들어 내 상처가 내 게으름의 집약체였고 이제 나는 그 상처와 함께 게으름에도 작별을 고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상상. 게으름 뿐만 아니라 두려움도. 모든 부정적인 생각들도.

오늘 수술이 나를 바꾸지는 못한다. 나는 나다. 상처 없던 30년 전에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하지만, 사실 실제로는 별 의미 없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시간의 마디가 아주 큰 의미로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듯, 그러니까 예를 들어 새해의 첫날에 모든 사람들이 새로운 미래를 기대하듯, 나도 내 상처에 작별을 고한 오늘 새로운 나를 꿈꿔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좀 더 활기차고 좀 더 용기있는 은성이를....

 
 
Posted by michelle

내 머리가 바보가 된 느낌이다. 얼른 책상치우고 남편이 그토록 부탁한 일들을 좀 처리해야겠단 마음으로 아기 재우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도무지 책상 치우는 것 조차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빨리 나 자신을 좀 추스리고 남편일에 합세를 해야 하는데 계속 늦어진다.

남편은 몸도 안좋은데 쉬고 싶어도 못쉬는 상황이다.

난 이제 내일을 위해 자야 한다. 남편에게 밤인사도 안 하고 그냥 슬쩍 이방을 나가련다.

미안하단 말도 못하고...
Posted by michelle
이게 얼마만인가... 내 책상에 내 데스크탑이 올라간 것이... 남편이 컴을 새로 장만하면서 쓰던 것을 준것이긴 하지만 참 감개무량하다. 내가 내 데스크탑을 가졌던 것이 2007년도가 마지막이었다. 그것도 일하면서 직장에 있던 컴퓨터 였으니, 집에서 내 컴을 데스크탑을 마지막으로 가졌던 것은 2004년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04년 이후에는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던 탓에 내 컴은 노트북이었고 데스크탑은 직장에만 있었다. 

우하하하... 2011년 8월 29일 내 조그만 책상에 수북이 있던 서류, 광고지 등등을 박스 하나에 처박아 버리고 남편이 버리는(?) 골동품을 기대만땅으로 받아들였다. 평화가 컴퓨터 두개 있다고 나보다 더 좋아한다.

컴 없이 오랜 시간을 지낸 것이 개발자로서 부끄러워 할 일인가? 남들은 어찌 볼지 몰라도 난 엄마로서만 산 지난 날이 너무 자랑 스러운 걸. 머 엄마로 잘 살아서가 아니라 엄마라는 자체가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일한다는 것, 그것도 집에서 일한다는 것...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아이들도 같이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민감한 나 그리고 아이들은 내 상태를 나보다 더 잘 읽어내니...

남편을 돕고 싶어서 그리고 남편과 함께 하고 싶어서 일하겠다고 큰소리 치긴 했지만 두려운 건 사실이다. 이 두려움에 대해 남편은 시작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한다고 머라고 할테지만, 난 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솔직한 마음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끌어 안아 줄 수 있겠어? 아니다, 남편에게 부탁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다. 이런 내 마음을 끌어 안아보자. 그래야 해결책도 보일 것 같다. 

컴아 반갑다.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보자. 바쁜 이 주인을 배려해서 다운되지 말고 순순히 말 잘 들어주시를... 알았쥐?
Posted by michelle
하루하루 아니 순간순간이 나에겐 싸움이다. 아이 둘에 집안일만 해도 내 하루는 가득찬다. 가득 차다 못해 시간이 너무 모자란다. 겨우겨우 급한 일만 하고 살고, 집은 엉망이며, 아이들에게 쏟고 싶은 시간도 다 쏟지 못하며 살아간다. 늘 끝내지 못한 일을 뒤로 하고 잠을 청해야 한다. 내일이 또 있으니...

항상 괴로운건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다. 늘 해야 할 일은 산적해 있고, 일을 해 내기는 커녕 매일매일의 새로운 일이 생길 뿐이다. 아이와 보낼 시간도 잘 못낸다. 대충 해 먹는 밥도 늘 시간에 쫒긴다.

한두번도 아니고 매일매일을 이렇게 쫓기어 사는 건 정말 힘든일이다. 자존감도 떨어지고 의욕도 떨어진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도 좋지 않은 것 같다. 어디가던지 누굴 만나던지 불안하다.

내가 이렇게 불안하게 사는 건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애써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누르고 밝게 힘차게 살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순간적으로 폭발해 아이들과 남편에게 쏟아 붓는다. 그러고 나면 또 마음과 몸이 힘들어 져서 추스리기 힘들어 진다.

몇일 전 설겆이 하면서 마음 껏 눈물을 흘렸다. 창을 보고 설겆이를 하게 되어 있는 싱크대가 이럴 땐 참 좋다. 뒤돌아 서서 아무도 보지 못하니 말이다. 그냥 열심히 부엌을 치우는지 알았겠지...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한테 좀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실래요? 누군가가 저에게 그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누가 봐도 엉망이고 특히 나 자신에게 너무 맘에 안들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나한테 잘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난 정말 너무 간절했다.

오늘 저녁에도 불쑥불쑥 내 안에서 올라오는 "힘든 것"과 싸우고 있었다. 느즈막히 낮잠자고 일어난 두 아이들. 배고파 징징대는 하늘이는 우선 애들 아빠에게 맡겨놓고 우선 평화의 저녁으로 볶음국수를 후다닥 만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 국수가 좀 식을 때까지 기다릴 겸 하늘이에게 젖을 먹였다. 식으면 좀 먹여달라고 남편에게 부탁을 하긴 했지만, 왠일인지 평화와 남편이 서로 대립구조다. 집에서 큰소리 나는 것이 싫어서 다시 하늘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평화 저녁을 내가 먹였다. 먹이는 도중 하늘이가 아빠 품에서 계속 낑낑댄다. 하지만 그것까지 신경쓰진 못한다. 그냥 계속 평화 먹이는데 집중했다. 남편이 목이 마르다길래 평화가 국수를 씹고 있는 틈을 타 얼음 음료수 하나 만들어다 주었다. 거실에서 평화는 비디오를 보면서 밥을 받아 먹고 있고 남편은 지쳤는지 소파에서 꿈쩍도 안하고, 거실은 아이들 물건으로 발 딛을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 없이 어질러져 있다.

참으로 한숨나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갑자기.. "평화야 너네 엄마가 정말 최고다. 너 인스탄트도 잘 안 먹이고(사실, 먹이는 날도 꽤 있는데...), 하늘이 먹을 것도 직접 생산하고 (모유수유를 뜻하는 듯했다.) 목마른 아빠에게 음료수도 가져다 주는 구나. " 평화의 국수 접시를 응시하고 있었지만 눈물이 핑 돌뻔했다. 너무 짧은 말이었지만 내게 필요한 "격려"였다.  음료수 가져다 준 보답으로 별 맘에 없는 말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게 필요한 것이었다. 궁금한 건... 약발이 어느정도 갈까? 내가 못하고 있는 일을 지적하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바로 약발이 떨어져 버릴지도...

아.... 남이야 뭐라고 하든, 힘을 내는 것 내 몫이다. 힘을 내자...




Posted by michelle

평화를 기르면서 평화를 향한 나의 마음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자주 견주어 보게 된다. 다음은 단편적이지만 내가 느낀 하나님의 마음들...

하나님도 내가 이렇게 이쁘게 보실까?

평화를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가슴이 벅차오른다. "어쩜 이렇게 이쁠까.." 발가락 하나하나 발톱 하나하나, 손짓 하나하나, 갖가지 표정에 아직 말이라고도 할 수 없는 이런 저런 평화가 내는 소리들... 이 모든 것이 내겐 너무 황홀하다. 툭하면 끌어 안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날 보실때도 이렇기 기분이 좋으실까? 스바냐 3장 17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시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게 내가 좋으실까? 라는 질문에는.. 아직 실감이 안간다. 내가 평화를 보면서 느끼는 이정도의 벅차오름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있는걸까... 머리로는 알겟는데 가슴으로는 아직...

말씀에 집중하기

나는 www.biblegateway.com 을 보면서 묵상을 한다. copy and paste로  내 블로그에 옮기기 좋고 나는 아직 TNIV 번역본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근데 그러다 보면 묵상 도중에 이메일에 블로그에 여기저기 돌아다기기도 한다. 묵상을 마치기 전까지는 다른곳은 절대 열어보지도 않기! 라는 내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놨지만 그냥 슬~쩍 딴곳을 기웃기웃하기도 여러번했다.

오늘도 묵상도중 이런 저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오래 끌었다. 그러다가 문득 밥을 한곳에서 먹지 않을 하는 평화가 떠올랐다. 자주 이리저리 쫓아 다니며 먹어야 하는 나... 평화에게 한곳에 앉아서 자기 식사를 끝내도록 하는 훈련을 시키고 싶지만, 너무 쉽게 무너진다. 

사실 식탁이 아닌 곳에서 밥을 먹을 수도 있다. 난 그것이 그렇게 나쁜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평화에게 그 훈련이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야, 식사중 잠시 일어나 다른 일들을 보고 다시 앉아서 먹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안되니까. 

묵상도중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어쩌면 좀 엄격한 율법일지도.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훈련이 아닐까. 하나님의 음성에 더 민감해지고, 그 분께 더 집중하기 위한 나를 위한 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하기. 그리고 그 분 말씀에 순종하기

평화는 아직 내 말을 잘 못알아 듣는다. 내가 '이리와' 해도 오지 않고, '가지마' 해도 가버린다. 어쩌면 알아들어도 무시하는지도 모른다. 아뭏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평화를 보는 일이 힘든경우가 많다. 쇼핑센타에 가도 이리저리 날뛰는 아이를 잡아 오느라 30분이면 해결할 일이 2시간이 걸릴때도 있다. 그래서 유모차나 쇼핑 카트에 아이를 묵어 놓은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평화에게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어서 내려놔 달라고 때를 쓴다.. 평화를 유모차에 태우든지, 유모차에서 내려 나와 같이 걷게 하든지, 나는 평화와 늘 씨름해야 한다.

사실 평화가 내가 오라고 하면 오고 가지 말라고 했을 때 가지 않는다면 평화와 갈 수 잇는 곳은 훨씬 많아진다. 지금은 우선 조금이라도 위험할 수 있는 곳은 절대 피한다. 평화가 몇걸음 나로부터 멀어졌을 때 차길이 있다거나, 물이 있다거나 하면 그곳엔 절대 갈 수 없다. 가더라도 유모차에 묶어 놔야 한다. 그래서 동네 산책을 갈 때도 한정된 곳만 가야 하고 어디 산이나 바다에 간다고 해도 주변을 각별히 살펴서 혹시나 평화가 내말 무시하고 달려갔을 때 늪이나 물가가 있다면 그 곳으론 아얘 가지도 않는다. 아무리 경치가 수려해도 공기가 맑아도 소용 없다. 절대 안되는 곳이다.

어떤 아이들은 (주로 좀 큰 아이들 이지만) 엄마 주변에 딱 붙어서 절대 멀리 떨어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 훈련을 잘 시켰는지 성품이 원래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평화는 언제쯤 내 말을 잘 듣게 될까... 그래서 경치좋고 물좋은 곳에 더 자주 더 많은 곳으로 가볼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또 그 말에 잘 순종하면 내 삶의 boundary가 점점 넓어지지 않을까... 내 지경이 점점 넓어지기 않을까... 지금 하나님께선 "저곳에선 은성이가 아직 내 말을 듣지 않을 테니 가면 안되겠어... 내 말을 좀더 잘 알아 듣고 잘 따라올때까지 기다려야지.." 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께선 하나님을 당신에 대해 알리시기 위해 우리를 많은 관계 가운데 두셨다. 부모와 자식도 그중 하나. 하나님의 마음을 더 많이 알아갈 것에 대해 기대된다.
Posted by michelle

꿈을 꾸었다.

끄적끄적 2009/09/13 21:27

얼마전에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 아버지가 팔순생신이셨다. 그래서 한국에 갔었다. 아버지 생신에 그렇게도 가고 싶었는데 가게된것이다. 남편도 평화도 같이 갔다. 정말 힘든 발걸음이었는데 남편이 기쁘게 동행해주고 힘든일도 도맡아서 해 주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 형부, 그리고 조카 예인이도 한국에 왔다. 시차 적응에 날씨변화에 쉽지 않은 한국 생활을 했지만 언니 가족또한 기쁘고 즐겁게 지냈다. 서울서 살고 있는 작은언니 가족은 거의 매일 부모님 집에 와 주었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부비댔다. 엄마 아빠 우리 세자매 이렇게 다섯이던 식구가 우리들이 결혼하게 되면서 하나 둘씩 줄더니 엄마 아빠 두분만 그 집에서 사셨드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식구가 열둘로 뻥튀기 되었다. 이렇게 모이기는 정말 처음.

생전처음으로 세자매가 같이 노래방도 갔다. 형부들의 엄청난 노래솜씨에 흠뻑 취했었다. 우리 큰조카 말대로 "아.. 이런 날이 오다니..."

아빠는 많은 말씀은 없으셨지만 정말 좋아하시는 기색이셨다. 연신 카메라로 손주들을 찍으시면서 좋아라 하셨다.

엄마의 육개장 맛이 아직 입안에 맴돈다. 그리고 늘 그리웠던 엄마의 나물솜씨.

우리 언니가 핀도 사주고 안경도 사주고... 평화도 이뻐해 주시고.. 오랜만에 언니들 사랑들 듬뿍 받으니 힘이 절로 났다.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단숨이 꾸어버린 꿈. 이제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 왔는데, 그 꿈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가슴이 저며온다.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남편이 한국에 가기로 기쁘게 결정해주고 동행해 준것. 한국에 평화를 비롯해 모든 조카들이 아프지 않은 것. 나만 혼자 돌아오고 남편과 평화는 한국에 있는데 평화가 엄마 없이도 너무나 잘 지내주는 것. 모든 것이 기도한대로 이루어 졌다.감사하다.
Posted by michelle
저녁을 하기위해 밥을 짓는데 솥을 전기 밥솥 안에 넣으려는 순간 꺅~ 놀라버렸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게 쌀의 양과 콩의 양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 콩이 잔뜩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은 콩돌이다. 콩을 너무 좋아해서 밥은 안 먹고 콩만 집어 먹는다. 그런 아이에게 양껏 먹이려니 우리 집 밥은 거의 항상 쌀반 콩반이다. 그래도 콩이 모자라기도한다.

그런데, 아들 평화가 집에 없는데도 나는 소위 "평화용 밥"을 지어버린 것이다. 나도 모르게. 에잇... 밥에서 콩 찾아 먹는 우리 아기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이가 타고 노는 자동차. 평화가 자기 장난감으로 착각하고 있는 효자손 - 그래서 우리집에선 효자손을 장난감 상자에서 찾는다 - 우리아들이 TV를 보는 어린이용 소파. 떼었다 붙였다 반복하는 냉장고 자석들 ... 나열하면 끝이 없다. 집안 구석구석에서 우리 아기가 눈에 선하다. 조금 전에 청소하다가 아기 방에서 잘까도 생각했다가 이러면 안되지 싶어 아얘 평화방 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결심했다. 보고싶고 생각날 때 마다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로...

이번에 한국에 있는 동안 평화에게 긍정적인 input이 많기를..
Posted by michelle
이건 우리 남편이 잘쓰는 말인데....

방금 집에 돌아왔다. 나 혼자다. 남편과 아들을 한국 시부모님댁에 맡겨놓고(?) 왔다. 친정 아버지 팔순 생신때문에 세식구가 한국에 갔다가 나만 돌아온 것이다. 난 학기중이라 한국에 더 오래 있을 수 없었다. 남편은 한국에 좀 더 있고 싶어 했고, 남편이 없으면 내가 아기를 보느라 학교에 다닐 수 없으니, 잠시 시댁에 아기를 맡기기로 한것.

한국에서 1주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순십간에 흘러갔다. 잠시 꿈을 꾼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인천 공항에서 엄마 아빠 언니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했다. 터질 것 같은 울음을 전화 너머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 들킬려고 정말 애먹었다. 휴지나 손수건을 안 가지고 다니는 성격이라 나오는 눈물을 그냥 다 흘려버렸다. 순간 도대체 내가 사랑하는 귀한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서 머하는 짓인지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갔다. 난 왜 외국에 살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러고는 속으로 하나님께 속삭였다. 주님 저 지금 그냥 좀 울께요... 이렇게 울고 싶을 땐 우는 거죠?

마음을 가라 앉히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래, 그럼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까?" 대답은... "아니"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가족들이 너무나 그립고 사랑하지만, 동시에 외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이 참 감사했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다. 난 한국을 사랑한다. 이마음은 아들 평화에게도 꼭 심어주고 싶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넓은 시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평화를 비롯한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후손에게 물려주고픈 유산이다. 세계를 무대로 살아가라!라고.

헤헤 머 내가 지금 대단한 것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내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쪼금 더 젊은 시야를 갖게 된 것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 부터이다. 이렇게 계속 자라가야지...

남편과 평화가 없는 동안 난 두과목의 중간고사를 치를 것이고 그동안 미뤘던 집안 일을 해치워야 한다. 한번 달려보자! 그런데 좀 심심할 것 같긴 하다. 집에 와도 아무도 없으니... 하지만 무엇보다 첨으로 엄마랑 떨어져 지내는 평화가 상처받지 않고 잘 지내주기를 기도한다.


Posted by michelle

The first day off

끄적끄적 2009/03/05 13:50

얏호~ 아들 평화가 태어난 후 첫 휴가다!

호주로 돌아 온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내가 시간을 마냥 흘려 보내고 아무것도 시작을 못하고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남편이 파격 선언을 했다. 앞으로 1주일에 하루는 자기가 집에서 아기를 볼테니 나보고 나가서 공부를 하던지 놀든지 맘대로 하라고... 오늘이 바로 그 첫날!

남편은 주로 집에서 일한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책을 하루빨리 마무리짓겠다는 생각에 얼마전부터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집에선 아무래도 집중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남편과 아들과 집에서 지내는 나는 남편 없이 아기 보는 것에 익숙해 져야 했다. 하지만, 머 남들 다 하는 건데 나라고 못할 리가 없다! 라는 생각으로 남편이 있으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데로 이래저래 꾸려가고 있었다. 

그러는 남편이 일주일 하루 출근을 나를 위해 포기한 것이다. 책 쓰는 것도 시간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일주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뚝 떼어 준 것이다. 집과 아이에게서 떠나야 내가 내 미래를 위해 먼가 궁리를 시작할 것 같다고 하면서... 이런 남편이 또 있을까 싶다.

아침에 가까운 기차역까지 남편이 운전해 주었는데 평화도 플래폼까지 와서 나를 배웅해 주었다. 기차가 떠나려 할때 바이바이 하면서 손 흔드는 날 보고 평화가 울려고 해서 마음이 아팠는데, 남편 왈, 바로 기분 좋아졌단다. ^^

그래서! 지금 나는 퀸즐랜드 주립 도서관에 나와 있다! 4년만에 돌아온 브리즈번은 많이 변해 있었다. 이 주립도서관이 그중 한가지다. 언제 새로 지었는지, 완전 호텔 저리가라 수준! 쾌적하고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은데다가 책보고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책보며 쉬는 곳처럼 꾸며 놓았다. 지금 내 앞에는 브리즈번 시내 전경과 브리즈번 강이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한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 거의 1년 반만에 갖는 나만의 시간. 그것도 남편이 없는 시간 쪼개어 준 시간이다. 아까는 밥먹는 시간도 아까와 이것저것 바쁘게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평화가 자는 시간엔 왜 이런 것들을 못했을까 자책이 되기도 한다. 꼭 여기까지 나와야만 했을까... 근데 너무 좋다. 너무 좋다. 이 시간이 낭비되기 싫은 만큼 평화와 집에서 보내는 시간들도 낭비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에 그동안 미루고미루던 다니던 학교에 편지를 보냈다. 15분이면 끝날 일을 그동안 왜 그렇게 못했을까 싶다.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좀 떨린다. 시작한 회계학 공부를 마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잘 모르겠다. 앞으로 내 미래를 어떻게 꾸려갈지 정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 인도해 주시고 도와주세요)


앞으로 적어도 1주일에 한번은 여기에 글을 남길수 있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Posted by michelle
그가 지금 아프다.

친구가 연말연초 휴가기간에 자기 집으로 놀러오라고 우리 가족을 초대했는데, 남편은 집에서 쉬겠다고 해서 아기와 나만 갔다 왔다. 아기가 없어야 자기도 쉴수 있다면서 늦게까지 놀러 오라고 하더니만, 신나게 놀고 돌아와보니 남편 몸이 불덩이다. 그 몸으로 저녁도 다 해 놓고.... 쩝....

저녁을 얼른 먹고 부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아기있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끼 먹고 먹이는 것도 전쟁이다. 2008년 마지막 식사인데 그래도 식탁에 앉아서 제대로 먹어보려 시도했으나, 결국엔 실패. 아기가 자기 식탁의자에서 일어나겠다고 칭얼거려서 내려 놓았더니, 거실로 나가 피아노를 치겠단다. 거실에 아기를 혼자 놔둘 수 없으니 난 밥 위에 찌게 몇 젓가락 올려서 거실로 나가 먹었다. 남편도 곧 합세해서 이제 이렇게라도 밥을 먹으려나 했더니만 아기는 또 금방 실증내고 자기를 내려 놓으란다. 그리고선 거실로 부엌으로 종횡무진이다. 휴...

어찌 저찌 식사를 마치고 아기 목욕시키고, 정확히 9시에 재우러 아기 방에 들어 갔다. '얼른 재우고 나가야지'하는 내 소망과는 반대로 오늘따라 아기가 잠을 잘 못잔다. 겨우겨우 재우는가 했는데.. 앗차! 나도 깜박 잠이 든 것이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온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몸도 마음도 불편한 목소리.. 앗! 미안 미안. 아기랑 같이 잠들어 버렸어. 흑...

남편은 체온이 더 올랐다. 39도가 훌쩍 넘었다. 비몽 사몽간에 찬물 수건, 물 등등 필요한 것을 가져다 주면서 시간을 보니 11시 반이다. 그 큰 몸집이 맥을 못추고 축 쳐져 거실 바닥에 누워있다. 수차례 찬물 수건을 갈아주고 약을 다시 먹이고 나니 정신이 좀 든다. 친구집에 간 것도 후회되고, 잠들어 버린 것도 너무 미안하다. '다시는 이사람 혼자 앓게 놔두지 말아야지' 다짐 또 다짐하는 사이 TV에서 불꽃 놀이가 시작됐다. 어느새 2009년이 와버린 것이다. 헉!

남편은 근래들어 이렇게 아프긴 정말 오랜만이다. 정말정말 아파서 신음소리가 난다. 거실엔 장난감과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부엌에는 아침부터 제대로 치우지 않은터라 설겆이가 쌓여있고, 식탁은 저녁 먹던 것이 그대로 널부러져 있고, 냄비 하나를 열어 보았더니 지나치게 더운 날씨 때문인지 아침에 끓인 국이 벌써 상해 버렸다. 꺅!

지금은 2시. 남편은 겨우 잠이 들었다. 아기는 두어번 깨긴 했지만 다시 쉽게 잠들었다.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엌과 거실은 그대로 이지만, 그래도 먹던 찌게과 상한 국은 치워 놓고 컴 앞에 앉았다...

나의 2008년은 이렇게 가고 2009년은 또 이렇게 시작되었다. 특별할 것 없지만 하루하루를 치뤄내야 하는 내 삶, 내 현실이다. 게다가 오늘밤은 남편이 아픈 것까지 겹쳐서 좀 더 힘들다.

이런 평범한 주부인 나도 새해소망은 있다. 사실, 이건 소망을 넘어 '꿈'이다.

우선, 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아기가 있는 주부는 단 하루라도 넋놓고 지낼 수 없다. 아니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내 눈 앞에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면서 웃다 울다 하는 저 조그맣고 소중한 미션(Mission)이 있으니.... 이를 위해 난 건강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영혼도 튼튼해야 한다. 앗싸! 아줌마 화이팅!

그리고 남편 사랑하고 섬기기. 사실 이것은 오늘 남편이 아프지 않았었다면 마은 속에는 있었을지언정 표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동안 아기 낳아 기르면서 남편한테 쪼금 소홀해진 것도 (아니라고 우기고 싶지만, 고백하건데) 사실이다. 내 남편 또한 내가 매일매일을 살아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를 위해 난 또 순간순간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의 건강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고, 그를 위해 기도 하고, 내가 필요할 때 그자리에 있어주면서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내 지경을 넓히고 싶다. 영어로 하면 'expanding my horizon'정도가 될까? 특별히 사람들과의 관계면에서. 더 많은 사람을 사귀고 싶은 것도 있고 지금 알고 지내는 친구들과 더 친밀해 지는 것도 포함한다. 왜 그래야 할까? 그냥 현재 관계에 만족하지 말이다. 이유는 두가지. 난 남편과 가족외에 다른 사람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간 적이 별로 없다. 난 항상 나의 인간관계 능력에 의문을 둔다. 사람들과 깊이 사귀면서 나 자신에 대해 시험(실험?)해 보고 싶다.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솔직히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지, 얼마나 충심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얼마나 그들을 내 삶에 들어오게 할 수 있는지, 한번 해보고 싶다. 또 다른 이유는 내 안에 다른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것이 있어서이다. 내 안에 있는 그분을 나누고 싶다.

그리고 한가지 더... "영어". 아, 이제야 New year's resolution 다운 것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올해에는 내가 특히 취약한 듣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겠다. 이 호주 사람들이 중얼거리는 말을 좀 알아들어야 겠다. 이를 위해 무얼하나? 아무래도 주위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해야 겠다. 겸손히. 솔직하게. 또 이렇게 하면서 인간관계를 배우는 것 아니겠어?

2009년을 맞이하면서 지금 내 머리 속에 있는 커다란 것은 이것들이다. 이것들이 왜 '꿈'이냐고? 꿈이라고 하면 현실가능한 것이 아니란 뜻도 있겠지만, 난 그런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 소중하고 중요해서 이 '꿈'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난 2009년 서른 여뎗의 나이에도 계속 꿈꾸는 사람이 될 것이다.

남편 열이 좀 내렸다. 아직 완전치는 않지만 이쯤하고 나도 좀 자야겠다. 내일(아니 벌써 오늘이군) 난 또 하루를 살아내야 하니깐. 오늘도 내 꿈이 나를 기다린다.






Posted by miche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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